1. 불안 방어기제
슈퍼에고가 매우 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근거도 없이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죄책감은 매우 괴로운 감정입니다. 근거가 별로 없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을 찾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무의식이 반응하여 무의식 안에 있던 불안 요소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불안을 방어하는 방어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환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수진 씨는 자신의 불안에 대해 정신분석 전문가와 상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몇 차례 상담을 받았고, 오늘도 상담을 예약하였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지금 집을 나와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수진 씨는 나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곧 시간이 지나 예약 시간이 지나버렸는데 수진 씨는 아직도 소파에 누워있습니다. 이제 정신분석 전문가는 다음 환자와 상담하고 있을 것입니다. 수진 씨는 혼잣말합니다. 내가 오늘 못 간 것은 내 탓이 아니라 진료실의 의자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너무 낮아서 허리가 아프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총명하고 늘 스스로 엄격한 수진 씨는 왜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예약 시간을 지나버린 것일까요?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모두가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을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핑계를 대고 해야 할 일을 외면했던 경험 말입니다. 이런 일은 이드와 슈퍼에고가 서로 상충할 때 일어나곤 합니다. 둘이 상충하여도 부드럽게 해결되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해결 없이 계속 충돌하면 중재자인 에고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즉, 이 스트레스를 우리는 불안이라고 부릅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커지면 에고는 일단 방패를 만듭니다. 이드와 슈퍼에고의 중간에 있는 에고가 만든 방패로 막고 있으면 이드와 슈퍼에고의 싸움은 잠시나마 멈춥니다. 이 방패를 우리는 불안 방어기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수진 씨가 이런 황당한 이유를 들어 예약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도 이러한 불안 방어기제 때문입니다. 수진 씨는 상담을 받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스스로 엄격했던 수진 씨는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참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상담하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솔직하게 다 말을 한 후에는 후회하였습니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다는 이드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면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슈퍼에고가 단언하였습니다. 이드와 슈퍼에고의 충돌이 생긴 것입니다. 이드도 슈퍼에고도 맞는 말이기에 충돌은 쉽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수진 씨는 방패 하나를 만듭니다. 푹신한 의자 때문에 허리가 아파서 갈 수가 없다는 자기 합리화로 이드와 슈퍼에고의 싸움이 드디어 멈춥니다.
2. 여우의 신포도
방어기제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우의 신포도'입니다. 요약하면 이러한 내용입니다. 어느 날 여우는 포도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포도를 보았습니다. 기쁜 나머지 달려가 포도를 따려 했습니다. 그러나 포도는 생각보다 높이 있었습니다. 목마른 여우는 힘을 다해 뛰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포도는 너무 높이 달려있어 딸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결국 포기하고 돌아섭니다. 그러면서 저 포도는 분명히 너무 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시니까 먹지 못할 거라고 말입니다. 방어기제에는 이렇게 수진 씨와 목마른 여우가 이용한 합리화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먼저 억압에 대해서 정리하겠습니다. 억압은 내가 인정하기 힘든 생각이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숨기고 억누르는 방어기제입니다. 가장 기본적이며 무의식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취소입니다. 취소는 어떤 일이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는 행동도 이에 속합니다. 부정은 내가 받아 들기 위해 감당하지 못할 감정이나 생각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행위인데 예를 들어 무서운 장면을 볼 때 눈을 감는다던가,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이를 의사가 잘못 판단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퇴행은 받아 들기 힘든 좌절을 경험했을 때 지금보다 더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다섯살 아이가 동생이 태어나니 아기가 된 것처럼 우유병으로 먹는다던가 기저귀를 찬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충동이나 욕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떠넘기는 행동입니다. 남 탓을 하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신체화가 있습니다. 남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말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몸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기 불편한 감정을 막기 위해 발동하는 방어기제입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신체화 장애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약간은 다른 형태의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성숙한 에고가 사용하는 방어기제에 속하는 것입니다. 유머가 이에 속합니다. 어렵고 괴로운 상황에서 유머로 긴장을 푸는 행동을 말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저격당하는 급박하고 놀라운 상황에 마주하였습니다. 분초를 다투며 지혈하는 간호사에게 영부인에게 허락받았냐고 농담하였습니다. 모두 긴장을 풀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이 유머는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승화라는 방어기제는 인정받지 못하는 욕구를 가치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로 예술이나 종료가 그 출구가 됩니다.
3. 방어기제의 예
수진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수진 씨는 상담하러 가는 것을 피했을까요? 스스로 고통과 괴로운 감정을 대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의식의 저항은 상담 시 주로 나타나는 환자의 반항 기제입니다. 환자들은 이러한 반항 기제가 나타날 때 상담 시간을 어기거나 지각을 합니다.
그러면 상담가의 진료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살펴보겠습니다. 수진 씨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엄격한 부모님에게 늘 혼나며 자라왔습니다. 잘하는 일이 있어도 부모님은 칭찬은 해주지 않았습니다. 수진 씨에겐 다섯명의 동생이 있어서 늘 부모님의 사랑은 동생들에게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진 씨는 갑자기 상담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료가 있는 날에 평소보다 더 열심히 근무하였습니다. 힘들고 피곤해도 자신은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할수록 수진 씨는 서운한 마음이 점점 생겼습니다. 상담가는 수진 씨만 아니라 예약된 환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수진 씨는 예약된 시간이 끝나고 칼같이 일어나야 할 때마다 화가 났습니다. 상담가가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밀어내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느꼈던 애증의 감정이 상담가에게 전이 되었을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부모님께 느낀 감정을 상담가에게 투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전이라고 합니다. 상담가를 좋아하고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긍정적 전이가 있는 반면에 상담가에게 공격적이고 시험하는 부정적 전이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수진 씨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담가에도 이러한 감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수진 씨를 진료하는 상담가는 이 박사님은 어느 날부터 수진 씨가 예약하면 그 앞, 뒤로 시간을 비워놓았습니다. 수진 씨가 일찍 도착해도 바로 시작하고, 예약 시간을 넘겨도 멈추지 않고 수진 씨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이 박사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희생적인 엄마처럼 수진 씨를 대했습니다. 이 박사님의 부모님은 희생적이고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이 박사님은 수진 씨를 상담해 주면서 자기 부모님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수진 씨에게 재현하였습니다. 이렇게 상담가가 환자를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으로 착각하는 것을 역전이라고 합니다. 상담가 또한 역전이를 겪으면서 환자를 깊이 이해하곤 합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다시 경험하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담가와 환자가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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